2015년 국립중앙박물관 7기 블로그 기자로 활동하게 되어 위촉식에 다녀왔습니다.

 

 

 

박물관 연혁과 시설을 소개한 자료, 블로그 기자 활동에 대한 자료와

대표 유물 핸드북, 취재에 요긴하게 쓰일 수첩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올 해 활동할 7기 블로그 기자는 총 14명입니다.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 담당님의 브리핑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박물관 내에 있는 식당 '나무'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3층에 있는 찻집 '사유' 차를 마시며 긴장됐던 마음도 진정시켰습니다.

박물관 홍보과 직원분들과 블로그 기자단과 함께 점심시간을 보냈는데요,

직원분들께서 업무 외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화제를 이끌어 주셔서

서먹함이 덜해졌습니다.

배려해 주시려는 마음을 읽게 되는 자리였습니다.^^

 

 

오후에는 상설전시관 으뜸홀에 모인 우리 블로그 기자단은

전문 전시 해설사님과 박물관의 대표 유물을 관람하며

필요한 지식과 정보들을 채워나갔습니다.

사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 인데요, 원본은 전주 경기전에 있으며,

조선 초기 어진의 특색으로 바닥의 깔개가 카펫 처럼 화려한 직조 원단입니다.

조선 후기에는 주로 화문석을 그렸다고 합니다.

또한 이 어진의 곤룡포만 푸른색인 것이 특색 이라고 합니다.

 

 

 

상설 전시관 1층 테마 전시실의 '중국 법첩' 에 전시된 유물입니다.

법첩은 인쇄술이 발달하기 전에 사용된 첩(일종의 책) 인데요,

유명한 서예가 구양순, 안진경, 왕희지의 글씨를 모사한 법첩과

비석에 새겨진 글을 탁본한 비첩 등 다양한 유물이 전시되어 있어,

서예에 관심있으신 분들께선 놓치면 안될 중요한 전시라고 생각됩니다.

 

 

 

신라의 대표 유물 금관입니다.

황금빛이 눈부시게 빛나는 금관의 재질은 순금은 아니라고 하는데요,

약간의 다른 재질을 섞은 이유는 실용성과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크고 작은 여러개의 금관이 발견 되어,

왕족의 어린이와 여자도 썼을 거라고 추측한다 합니다.

 

 

 

부안의 개암사 괘불인데요, 작품의 크기는 1317cm x 약 9미터 이며,

자세히 보시면 위아래로 줄이 길게 보이는데요,

30cm 폭의 삼베 28폭을 이어 붙여서 그렸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1749년 화승 '의겸'의 주도로 12분의 비구승과 함께 그렸는데요,

250명의 시주자 이름이 기록돼 있다고합니다.

오랜 시간이 흘렀으나 아주 깨끗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먹선으로 그린 초본과 함께 보물 1269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과 노사나불, 비로자나불을 함께 그려 석가 삼존을 표현,

좌우에 6분의 협시보살을 그려 7존상을 표현했습니다.

화려한 색상과 다양한 문양 이면서 장엄하게 느껴집니다.

 

석가모니불의 어깨가 다소 과장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드시는지요???

이 괘불은 절 마당의 당간지주에 걸어 놓고 야단법석 이나

기우제 때에도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멀리서 바라보았을 때 어깨가 좁아 보이는 착시현상을

방지하기 위해서 약간 넓게 그렸다고 합니다.  과학적이죠 ^^

 

 

 

 

대표적인 청자로는 '칠보무늬 향로'와 사진에 보시는

'포도 동자무늬 표주박모양 주자'에 대한 해설을 들었습니다.

 

이 유물의 동자는 근대 화가 이중섭 선생님에게 영향을 끼쳤다고 하는데요,

포도색을 표현한 철화는 당대에 우리나라에서만 만들어 내던

특별한 기법 이었다고 합니다.

 

아래 있는 주발에 뜨거운 물을 담아 주자에 담긴 술을 덮혔다고 합니다.

아마도 청주를 드셨나 봅니다.

 

 

 

폼페이 특별전시회도 관람하였는데요,

사진은 '정원을 그린 벽화' 입니다.

참새, 비둘기, 나이팅게일 등의 여러종류의 새와

장미, 소나무, 백합 등의 다양한 꽃들을 사실적으로 그렸는데요,

찾아보기 체험을 하도록 작은 도판이 준비돼 있었어요.

 

프레스코화와 대리석 조각상, 실내가구 등에서

화려했던 귀족들의 생활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술의 신 바커스 청동상 입니다.

폼페이의 비옥한 토지에는 포도 농사를 많이 지었다고 하는데요,

포도 와인은 폼페이 주된 수출품 이었기에

그리스 영향을 받아 신을 숭배하던 폼페이 사람들은

바커스를 특히 경외 했다고 합니다.

 

또한 풍부하게 생산된 농산물과 와인,

바다가 인접했던 폼페이는 어업도 활발하여

경제도시였다고 하는데요,

이런 이유로 정확한 계량을 필요로 했으며

저울과 저울추 등의 유물도 관람하실 수 있습니다.

 

 

79년 베수비우스 화산이 큰 폭발을 하여

한순간에 사라진 폼페이가 타임캡슐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사진은 '웅크린 남자' 캐스트 인데요,

화산에서 좀 떨어진 지역에서 발견 되었다고 하며

화산재를 막으려 손으로 코와 입을 막고 있습니다.

 

 

신을 숭배하며 잘 살던 폼페이 인들에게

자연재해는 예고없이 다가와 안타까움을 더합니다만,

이천년이 지나 그들의 화려했던 생활을 보게 되는군요.

 

위촉식 후기를 마치며,

국립중앙박물관 7기 블로그 기자로 다양한 소식들을 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진/글 국립중앙박물관 7기 블로그 기자 김혜연

 

 

 

 

Posted by 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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